유럽특허청(EPO) 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셨을 정도이면, 이미 해외 특허 출원에 대한 공부를 어느 정도 하셨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내 특허 하나 받는 것도 쉽지 않은데, 유럽까지 생각하고 계신 거잖아요. 그 자체만으로도 사업에 대한 진지함이 느껴집니다.
안녕하세요.
특허법인 테헤란, 윤 변리사입니다.
오늘은 유럽특허청, 즉 EPO(European Patent Office)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해외 특허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이 바로 이 EPO입니다. 복잡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게 당연합니다. 저도 처음 유럽 출원 업무를 맡았을 때, 국내 특허청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EPO, 그게 정확히 뭔가요?
유럽특허청은 유럽 특허 협약(EPC)에 기반해 설립된 지역 특허 기관입니다. 쉽게 말해, 유럽 38개 회원국 전체를 대상으로 하나의 출원으로 특허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창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EPO에서 특허를 받는다고 해서, 38개 회원국 전체에서 자동으로 특허권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EPO는 심사를 통해 특허를 '허여(grant)'해 주는 기관이고, 실제 권리 발생은 각 회원국에 별도로 '국내 단계 진입'을 해야 합니다. 이 차이를 모르고 진행했다가 낭패를 보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에서 권리를 확보하려면, EPO 등록 후 각 나라별로 번역문 제출 및 연차료 납부를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 반드시 기억해 두십시오.

왜 EPO를 통해 출원하는 건가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유럽 38개국에 각각 따로 출원하면 어떻게 될까요?
비용도 비용이지만, 각 나라마다 다른 언어, 다른 절차, 다른 심사 기준을 상대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죠. EPO는 그 번거로움을 하나의 절차로 묶어주는 시스템입니다.
출원 언어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영어로 출원합니다. 심사도 EPO에서 통합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각국에 따로 대응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다만,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내 특허 출원과 비교하면 몇 배에서 수십 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EPO 출원은 '유럽 시장을 진지하게 공략할 것인가'라는 사업적 판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냥 특허 하나 더 받아두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나중에 연차료 부담에 허덕이게 됩니다.

PCT 경로 vs 직접 출원, 뭐가 다른가요?
EPO에 출원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PCT(특허협력조약) 국제출원을 먼저 한 뒤, 유럽 지역을 지정해서 EPO 심사로 넘기는 방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EPO에 직접 출원(Direct EP filing)하는 방법입니다.
PCT 경로를 택하면 출원일로부터 약 30~31개월 이내에 EPO 국내 단계 진입을 해야 합니다. 이 기간이 중요합니다. 이 시간 동안 시장성을 검토하고, 비용 투자 여부를 결정할 여유가 생기거든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PCT를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일단 출원일을 확보해 두고,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그때 각국으로 진입하는 전략입니다.
반면 EPO 직접 출원은 처음부터 유럽만을 타겟으로 할 때 유리합니다. PCT 절차를 생략하니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회사의 상황과 목표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판단을 혼자 내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잘못된 경로 선택은 몇 년 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EPO 심사, 국내보다 까다롭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EPO 심사는 국내 특허청보다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EPO는 진보성(inventive step) 판단에서 특히 엄격합니다. 국내에서 등록된 특허라도 EPO에서는 거절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청구항 작성 방식도 다릅니다. 국내 특허 명세서를 그대로 번역해서 EPO에 제출하면 십중팔구 문제가 생깁니다.
최근에 상담한 고객 중에 이런 분이 계셨습니다. 국내에서 특허를 잘 받아두셨고, 유럽 바이어와 계약 이야기가 오가면서 EPO 출원이 필요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내 출원 때 작성된 명세서를 그대로 번역해서 EPO에 제출하려 하셨더군요. 제가 보기엔 청구항 구조 자체를 EPO 기준에 맞게 재설계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상담 단계에서 잡아낸 케이스였습니다.
EPO는 심사 과정에서 Examination Division과 Opposition Division 두 단계를 거칩니다. 등록 후에도 9개월 이내에 제3자가 이의신청(Opposition)을 할 수 있습니다. 즉, 등록이 끝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견고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단순한 대리를 찾는 분이 아닌, 장기적인 윈윈 관계를 원하는 분들을 전 좋아합니다.

EPO 출원, 언제 시작해야 하나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특허는 선출원주의입니다. 먼저 낸 사람이 이깁니다. 유럽 시장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면, 사업이 본격화되기 전에 출원을 준비해야 합니다. 유럽에서 제품을 공개하거나 전시회에 출품하기 전에 반드시 출원을 마쳐두십시오.
국내 특허를 먼저 출원한 경우, 출원일로부터 12개월 이내에 EPO 또는 PCT 출원을 해야 우선권 주장이 가능합니다. 이 12개월을 놓치면, 국내 특허 출원 후 공개된 내용이 선행기술로 작용해서 유럽 특허 등록을 막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기한을 모르고 12개월이 지난 후에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우선권을 포기한 채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안타깝습니다.

비용은 얼마나 드나요?
EPO 출원 비용은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대략적인 감을 드리겠습니다.
EPO 출원 자체 비용(관납료 + 대리인 비용)만 해도 수백만 원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에 심사 진행, 각국 국내 단계 진입, 번역 비용, 연차료까지 더하면 전체적으로 상당한 금액이 투입됩니다. 독일 하나만 선택해서 권리화해도, 국내 특허 한 건 대비 몇 배의 비용이 드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유럽 시장에서 제품을 팔고, 경쟁사를 막을 수 있는 무기를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투자입니다. 단, 그 투자가 실제로 효과를 내려면 처음부터 제대로 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어느 국가를 지정할 것인지, PCT를 경유할 것인지, 청구항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이 세 가지를 잘못 결정하면 비용만 쓰고 실질적인 권리는 허술한 특허가 나옵니다. 러시안 룰렛처럼 운에 맡기는 게 아니라, 처음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합니다.
19년간 수많은 해외 출원 사건을 다루면서 느낀 건, 유럽 특허는 '알면 알수록 전략이 보인다'는 겁니다. 모르면 비용만 날리고, 알면 제대로 된 권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생각과 업무철학에 동의하신다면 문의 주셔도 좋습니다. 가장 정확하고, 신속한 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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